2016년 개봉한 대니쉬 걸(The Danish Girl)은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덴마크 화가 릴리 엘베(Lili Elbe)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겪는 내면의 갈등과,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주인공 에이나르 베게너(에디 레드메인)가 릴리 엘베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하지만 사회는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심지어 의학계조차 그를 ‘질병’으로 취급하려 합니다. 이 리뷰에서는 릴리의 내러티브와 사회적 시각, 그리고 그 사이의 충돌을 중심으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깊이 탐구해보겠습니다.
1. 릴리의 이야기 – 스스로를 발견하는 여정
릴리 엘베, 즉 에이나르 베게너는 덴마크에서 성공한 화가로, 아내 게르다 베게너(알리시아 비칸데르)와 함께 예술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연한 계기로 여성의 옷을 입게 되고, 그 순간 자신의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던 감정이 깨어남을 깨닫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장난처럼 보였던 이 일이 점차 그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릴리는 단순히 남성의 몸을 가진 사람이 여성처럼 보이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래 여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그는 자신의 존재를 이해할 언어조차 없는 상태에서 내면의 갈등과 싸우게 됩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신체적 변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이 진정한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겪는 감정적, 심리적 변화를 섬세하게 그립니다. 릴리는 ‘에이나르’라는 정체성을 벗어던지고 ‘릴리’로 살기를 원하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를 정신병자로 취급하며 억압하려 합니다. 심지어 의사들조차 그를 치료 대상으로 여기며 강제적인 정신 치료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릴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성전환 수술을 받기로 결심하며, 그 과정에서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적 거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도 감수해야 합니다.
2. 사회적 시각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1920~30년대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던 시대였습니다. 릴리의 변화는 단순한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도전이었습니다.
릴리가 자신을 여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주변 사람들은 이를 병리적으로 해석하려 합니다. 남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남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이로 인해 릴리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배척을 경험합니다. 특히 당시 의학계는 성 정체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릴리를 정신병자로 규정하고 강제적인 치료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사회적 억압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게르다 베게너는 릴리의 가장 큰 지지자로 등장하며, 그녀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도우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지만, 결국 그녀는 릴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응원합니다. 이는 릴리가 단순히 개인적인 여정을 넘어, 타인의 이해와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3. 갈등과 조화 – 정체성을 둘러싼 충돌
릴리의 여정은 개인과 사회의 충돌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큰 변화를 불러옵니다. 특히 게르다와의 관계는 영화의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게르다는 남편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녀는 릴리를 사랑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던 에이나르는 점점 사라져갑니다. 영화는 이러한 감정을 단순히 슬픔이나 배신감으로 그리지 않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사랑으로 풀어냅니다.
게르다는 릴리를 돕지만, 동시에 자신도 상실감을 겪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그녀 역시 성장합니다. 그녀는 단순히 릴리의 아내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릴리의 선택을 지지하는 친구이자 동반자가 됩니다. 이러한 관계는 성소수자 이슈를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나가야 할 문제임을 시사합니다.
4. 영화가 던지는 질문 – 우리는 얼마나 ‘진짜 나’로 살고 있는가?
-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얼마나 솔직하게 인정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 사회가 규정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얼마나 유효한가?
- 사랑하는 사람이 변해갈 때, 우리는 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릴리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기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본질을 억누르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결론 – 자신이 되어가는 용기
대니쉬 걸은 단순한 전기 영화가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용기와 그 과정에서의 희생을 담은 작품입니다. 릴리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찾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한 트랜스젠더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신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겪는 내면의 갈등을 반영합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우리는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나는 지금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릴리가 삶을 걸고 증명하려 했던 것은 단순한 성 정체성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살아가는가, 아니면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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